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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책방-최원대] 영혼의 언어, 감정
  • 기사등록 2025-05-07 11: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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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즐겨 찾던 동화책을 어른의 시선으로 다시 읽고, 해석한 뒤 메시지를 나눕니다. 감정, 공감, 소통, 배려, 관계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로 삶의 핵심 가치를 돌아보고, 자신만의 칼럼으로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지난 일주일 간 느꼈던 감정을 모두 써보세요."

강의 시간에 이런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은 한참 동안 펜을 멈춘다. 고민 끝에 적는 감정의 수라고 해봐야 손에 꼽는다. 남자들은 대부분 다섯 개조차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여자들도 평균 일곱 개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다양한 감정 리스트를 보여주고 다시 세어보게 하면 열 개, 스무 개까지도 손쉽게 체크한다. 감정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매우 복잡하고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한다. 국어사전에 등록된 감정 단어의 수는 무려 434개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소 ‘짜증나’, ‘좋아’, ‘힘들어’와 같은 몇몇 단어로만 복잡한 감정을 뭉뚱그리곤 한다.

최근 화제가 된 넷플릭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의 금명도 그렇다. 부모의 지나친 헌신과 기대 앞에서,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대신 “짜증나”라는 말로 모든 마음을 퉁쳐버린다. 하지만 그 속에는 감사함, 불편함, 답답함, 난처함, 애잔함, 서러움, 목메임, 심지어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까지, 수십 가지의 감정이 얽혀 있다.

 

표현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내 감정을 뭉개지 않고 섬세하게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더 많이, 더 구체적으로 감정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감정 표현에 서툴고 인색하다. 과격하지만 거세되었다는 표현마저 쓸 수 있을 정도다.


이러한 한국 특유의 문화가 사회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면 어떻게 될까? 김보름 작가의 『감정조절기 하트』는 바로 그런 세계를 그린다. 동화 속 아이들은 가슴에서 나오는 감정 파장을 감지하는 '하트'를 착용한다. 감정은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로 표시되고, 편안함을 상징하는 초록을 꾸준히 유지하는 아이가 좋은 점수를 받는다. 기분에 점수를 매기고, 감정을 성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감정 관리 능력은 경쟁 요소가 되어 평온을 유지하기 위한 과외까지 등장한다. 어떤 아이는 진짜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 억지로 스스로를 단련하기까지 한다. 아이들은 결국, 감정이 없는 인간이 되어가는 길을 강요받는다.

 

『감정조절기 하트』가 보여주는 사회는 결코 SF적 상상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는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화가 나도 참으며, ‘남자다운’, 혹은 ‘프로다운’ 모습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감정을 억누른다. 대놓고 감정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 하는 와중에 여러 감정들이 억눌려 해소되지 못하게 된다.

감정은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감정은 그 자체로 나를 이루는 진실이며 기쁨과 더불어 슬픔도, 사랑 외 분노도, 질투도 모두 내 삶의 일부다. 삶의 일부를 억누르도록 강요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건강한 사회는 다양한 감정이 자유롭게 흐르고, 이를 표현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곳이어야 한다. 프랑스 작가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예술 속에 개인적 감정을 담는 일처럼 맥 빠지는 것은 없다’고 말했지만, 개인의 삶에는 감정이 풍부하게 담겨야 예술처럼 아름다워진다.


감정은 영혼의 언어라고 한다. 감정을 잃는 순간 우리는 영혼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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